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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는 명성고 연극반 담당교사 시절 아내의 여동생을 지도했다고 하는데 그 여동생이 바로 지금의 처제입니다. 최희정 씨는 "동생을 잘 봐달라"며 매일 삶은 달걀 두 알을 이순재에게 가져다 줬다고 합니다.


 결국 그 달걀이 인연이 되어서 이순재 최희정 두 사람은 1966년 백년가약을 맺게 됩니다.


이순재 결혼 사진


이순재 아내 최희정 스토리


아내는 이화여대 한국 무용과를 졸업할 정도로 재원이었지만 결혼 후 무용을 포기하고 내조에 올인했다고 하죠


이순재는 명문대까지 나와 집안에서조차 반대하는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그 당시에는 (배우가)집안의 90%가 반대하는 직종이었다"고 말했는데 얼마나 힘들게 연기를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최희정 씨가 아이들의 돌 반지를 팔아 만둣집을 운영하며 그의 뒷바라지를 한 일화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그는 젊은 날 사랑은 사치라 생각하며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다가온 유일한 사람은 당시 명문대 무용과 출신이었던 그녀였다고 하죠.


그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 사람 정성에 반했다. 외모도 괜찮았고 그것보다는 그 사람의 열성에 반했다"


당시 촉망받는 인재였던 이순재 아내의 나이는 6살 차이가 나는 연하이며 무용을 포기하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순재 아들과 딸이 있는데 아들은 이서진 친구들이 동창이고,  딸과는 뉴욕에서 공부를 함께 했었다고 합니다.



이순재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만날 것이고 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나도 빌딩 하나 지을 수 있을 거다. 60년도엔 빌딩이 하나 없었다. 40~50년의 세월이 가난했지 않나"며 1990년도 후반부터 20년 사이에 달라졌다. 우리 그 시절은 가난한 시절이다. 고생 많이 시켰으니까 당연히 다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순재의 젊은시절 사진을 보면 정말 훈남이네요.



특히 젊은 층은 잘 모를수도 있지만 이순재가 연예인으로는 특별하게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지난 1988년 제 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서 정치계에 발을 내민 것이었는데 당시 아쉽게도 평화민주당 이상수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고 맙니다.


이후 1992년 제 14대 총선에서 다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출마를 하면서 높은 득표율을 얻으면서 국회에 입성하게 됩니다. 이어 이순재 국회의원 당시 1993년에는 민자당 부대변인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15대 총선에서는 "나이 60에 초선의원으로 정계 뜻을 펴기엔 한계가 있다"며 "저는 연기나 하겠습니다"고 정계은퇴를 하게 됩니다.


예전에 KBS 2TV '승승장구'에 출연해서도 "정치 생활 8년간 단 한번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회상하기도 했죠.


또한 정치를 한 계기에 대해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당시 협회 대표가 비례 대표로 선출이 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순재는 '네들이 무슨 국회의원을 하냐'는 시선이 있었다. 다들 변호사, 검사 출신의 법조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에 '당신들이 무슨 국회의원을 해'라는 눈빛이었다"고 하죠.


그래서 맞서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데 대중문화예술계가 무시 당했기에 가많이 있을 수 없던 것입니다.



아내와의 애틋한 장거리 연애를 하던 이순재는 그가 출연했던 멜로 영화처럼 로맨틱한 편지와 구애로 아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사실 장래가 촉망 받던 무용수였습니다. 유명 무용 콩쿨에서 신인상을 받아 유럽 순방 공연을 다닐 정도의 재원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촉망받던 무용수는 내조의 여왕, 베테랑 주부가 되었고 한 달 중, 절반 이상을 촬영장에서 보내는 배우 남편을 이해해주는 것은 물론, 그가 편히 연기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두 명의 아이를 키워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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